DAILY BREAD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나훔서 2장 1–13절
DAILY BREAD · 나훔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나훔 2:1–13
오늘의 본문

고대 세계의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불패의 신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참히 무너져 내립니다. 교만한 대적에게는 공포의 선고이지만, 고통받던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참된 영광의 회복이자 확실한 위로의 말씀입니다.

WORD STUDY
בּוּקָה וּמְבוּקָה וּמְבֻלָּקָה
부카 우메부카 우메불라카 — "공허와 황폐"
세상의 것을 미친 듯이 긁어모았으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국 텅 비어 버린 허무한 상태를 소리 내어 묘사함
삶의 적용
내 삶에 의지하고 있는 세상의 견고한 산성은 무엇입니까? 인생과 역사의 참된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겪지 않았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성도님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아내신 분들입니다. 가난과 전쟁의 상흔 속에서 땀 흘려 일하셨고, 나라가 발전하는 모습도 보셨지만, 동시에 영원할 것 같았던 거대한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자들이 덧없이 쓰러지는 모습도 수없이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이것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이 권력은 영원하다"라고 속삭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만들어내는 '불패(不敗)의 신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나훔 2장의 말씀은, 바로 그 고대 세계의 '불패의 신화'였던 앗수르 제국, 그리고 그들의 웅장한 수도 '니느웨'가 어떻게 철저하게 무너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당시 주변국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했고, 그들의 군대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다 백성들 역시 그 압제 아래서 길고 긴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선지자 나훔은 마치 종군 기자가 전쟁터 한가운데서 생중계를 하듯이, 그 철옹성 같던 니느웨가 함락되는 장면을 눈에 그리듯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의 거대한 힘 앞에 위축되지 않고, 우리 인생과 역사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깊이 만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심판의 약속과 하나님의 조롱 섞인 경고 (1–2절)

본문 1절을 보면, 선지자 나훔은 니느웨를 향해 적군이 쳐들어왔음을 알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1절)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니느웨를 걱정해서 방어를 잘하라고 충고하는 말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매서운 조롱(Mocking)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지키다(나차르)', '굳게 하다(하자크)'와 같은 아주 강력한 명령형 단어들을 연거푸 사용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뜻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발버둥 쳐 보아라!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쥐어짜서 성벽을 지켜보아라. 그러나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아무리 철통같이 방어해도, 하나님께서 멸망을 작정하시면 인간의 노력은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젊은 시절, 내 인생의 성벽을 높이 쌓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 살아왔습니까? 돈으로, 건강으로, 자식들의 성공으로 내 삶의 허리를 견고히 묶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 인간이 쌓아 올린 산성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무서운 심판을 내리시는 가운데, 엎드려 울고 있던 유다(야곱)를 향해서는 "내가 야곱의 영광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의 강자였던 앗수르에게는 멸망의 선고가, 오랜 세월 앗수르에게 짓밟혀 고통받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참된 위로와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믿고 의지해 온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2. 아시리아 불패설(不敗說)의 종식 (3–5절)

이어지는 3절부터 5절을 보면,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치러 온 군대의 모습을 아주 입체적이고 무시무시하게 묘사합니다. 그들의 방패는 '붉은색'이고, 군복은 '자주색'이며, 병거는 횃불처럼 번쩍이고 번개처럼 질주한다고 말합니다. 왜 성경은 적군의 모습을 이토록 살기 등등하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앗수르의 군대가 약해서 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진리처럼 박혀있던 '아시리아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그 거짓된 불패의 신화를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때로 세상은 우리를 윽박지릅니다. 물질의 힘, 세상의 권력, 건강의 위협이 마치 번개처럼 우리 삶에 달려들 때, 우리는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내 노후는 어떡하나, 우리 자식들은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가나."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강대한 힘도, 역사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는 일순간에 멈춰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불패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패배하지 않으시는 분은 우리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3. 약탈당하는 자의 아이러니 (6–10절)

이제 6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니느웨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두 가지 기가 막힌 '아이러니(역설)'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물의 아이러니'입니다.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과 코서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풍부한 물을 보며 안심했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6절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그들을 철통같이 지켜주던 바로 그 강물이 범람하여 성벽을 무너뜨리고 맙니다. '물로 버텨오던' 자들이 '물 때문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가장 의지했던 것, 나를 평생 지켜줄 줄 알았던 그것이 하나님을 떠날 때는 도리어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약탈당하는 약탈자의 아이러니'입니다. 앗수르는 수없이 많은 약소국을 짓밟고 빼앗아 부자가 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털리고 약탈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 찬란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이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무릎이 후들거려 도망가기 바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성경이 이들의 비참한 끝을 아주 재미있는 히브리어 발음으로 묘사합니다.

"공허하고 적막하며 황폐하도다" (10절)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어는 부카 우메부카 우메불라카(בּוּקָה וּมְבוּקָה וּמְבֻלָּקָה)입니다. 원어의 발음을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텅 빈 항아리에 바람이 윙윙 불어가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세상의 것을 미친 듯이 긁어모아도,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감사치 않는 자의 끝은 이처럼 텅 빈 '부카 우메부카 우메불라카'가 되고 맙니다. 인생의 황혼 녘에 서신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손에 남는 것은 결국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 흘린 기도의 눈물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임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4. 무너진 사자 굴의 비유 (11–12절)

11절과 12절에서 선지자는 이 앗수르의 권력을 '사자'에 비유합니다. 고대 유적을 발굴해 보면, 앗수르의 왕궁에는 유독 사자 조상을 새긴 부조나 조각상이 많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힘세고 잔인한 사자라고 여겼습니다. 사자가 먹이를 갈기갈기 찢어 자기 굴로 가져오듯, 그들은 연약한 이웃 나라들을 찢고 전리품을 가져와 니느웨라는 자기들의 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나훔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제 그 사자의 굴이 어디 있느냐? 그 사자들이 어디로 갔느냐?"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무섭게 포효하며 남을 짓밟던 그 사자가, 이제는 이빨 빠진 채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사자처럼 힘을 과시하고 교만을 떨어도, 하나님이 손을 드시는 날에는 일순간에 거꾸러지는 것이 연약한 인생입니다.

5. 만군의 여호와의 심판 선고: "내가 네 대적이 되어" (13절)

오늘 설교의 결론이자, 이 모든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말씀이 바로 13절에 나옵니다. 앗수르가 멸망한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벨론 연합군이 강해서입니까? 앗수르 군대의 힘이 빠져서입니까? 아닙니다. 역사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13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13절)

히브리어로는 힌니 엘라이크(הִנְנִי אֵלַיִךְ)로, 직역하면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Behold, I am against you)"입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내가 너를 상대하겠다. 내가 너의 적이 되겠다"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때 이방 나라 앗수르를 이스라엘을 깨우치는 막대기로 들어 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을 넘고, 교만해져서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높였을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대적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대적이 되시니, 그 많던 병거는 불타 연기가 되고, 젊은 사자들은 칼에 찔려 쓰러졌습니다. 오만하게 울려 퍼지던 그들의 목소리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남은 여정, 누구를 두려워하며 의지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나훔 2장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참으로 깊고도 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악인들이 득세하고, 교만한 자들이 사자처럼 포효하는 것 같습니다. 앗수르 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는 가끔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불의를 심판하시고 교만한 자를 꺾으시는 분은 오직 우리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악인에게 하나님의 주권은 철저한 패망과 심판이지만, 오랜 세월 눈물로 기도하며 믿음을 지켜온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보다 더 확실한 구원과 위로가 없습니다. "내가 네 대적이 되리라" 하신 이 말씀은, 악인에게는 저주의 선고이지만, 우리에게는 "내가 친히 너를 위해 싸워주마" 하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지금까지 험한 인생길, 주님의 은혜로 잘 달려오셨습니다. 남은 우리의 여정 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내 삶을 지켜줄 것 같은 통장 잔고나 인간관계라는 '강물'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도 마십시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우시는 그 크신 하나님 한 분만을 굳게 붙드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평안과 감사를 누리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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