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BREAD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미가 7장 1–20절
DAILY BREAD · 미가서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미가 7:1–20
오늘의 본문

부패한 사회 속에서 절망하던 미가는, 오직 여호와만을 우러러보며 인내로 기다리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허물을 사유하시고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분이십니다.

WORD STUDY
חֶסֶד · אֱמֶת
헤세드 · 에메트 — "인애와 성실"
한결같은 언약적 사랑(헤세드)과,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심(에메트)
삶의 적용
오늘 나는 무엇을 우러러보고 있습니까? 사람인가, 여호와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제는 정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라고 탄식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뉴스를 켜면 들려오는 부정부패,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간의 비극적인 다툼,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이기주의 속에서 우리는 깊은 영적 갈증과 절망을 느끼곤 합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 미가가 살았던 주전 8세기 남유다 사회가 정확히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미가는 그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위대한 소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1. 텅 빈 과수원 — 썩은 사회에 대한 탄식 (1–6절)

미가 7장은 선지자의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와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이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1절)

미가는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사회를 '수확이 끝나버려 열매가 하나도 남지 않은 텅 빈 과수원'에 비유합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메말라버린 기갈 상태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없었기에 미가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을까요?

2절을 보면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경건한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씨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발걸음을 거룩하게 지켜가는 성도들이 이 사회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악인들의 탐욕이었습니다. 그들은 피를 흘리려고 숨으며 각기 헤렘(그물)으로 형제를 잡으려 했습니다. 짐승을 사냥할 때 쓰는 그물을 사람에게 던지는 사회, 타인의 생명마저 내 이익을 위한 사냥감으로 전락해 버린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3절을 보면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고, 권세를 가진 자인 학가돌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서로 아바트합니다. 이 '아바트'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쓰인 단어로, '서로 얽어짜다, 치밀하게 공모하다'라는 뜻입니다.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지도층 전체가 거미줄처럼 얽혀 구조적으로 불법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총체적 타락은 결국 가장 기본적인 신뢰마저 붕괴시킵니다. 5절과 6절에서 미가는 이웃을 믿지 말고, 품에 누운 아내에게도 입을 조심하며, 아들과 딸과 며느리가 부모를 대적하여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지옥이 되어버린 불신의 사회, 이것이 죄악이 잉태한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2.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보다 (7–13절)

그러나 성도 여러분, 참된 선지자, 참된 신앙인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봅니다. 모든 인간적인 신뢰가 무너진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미가는 위대한 신앙의 선언을 터뜨립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7절)

이 짧은 고백 속에 담긴 두 개의 히브리어 동사는 우리가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차파(우러러보며)는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파수꾼이 적의 동태나 아군의 구원군을 애타게 찾듯 '시선과 마음을 한 곳에 고정하여 주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환경에서 눈을 거두어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의 초점을 맞추는 절대 신앙입니다. 야할(바라보나니)은 '참을성 있게 기대하고 인내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내 기도에 당장 응답이 오지 않고, 당장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여호와의 때를 고대하는 참된 성도의 인내를 보여줍니다.

미가는 유다 백성이 범죄했기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8절에서 원수들을 향해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내가 엎드러질지라도"에 쓰인 히브리어 나팔르티는 문법적으로 '예언적 완료형'입니다. 아직 완전히 망하지도 않았고 아직 구원받지도 않았지만, 장차 다가올 심판과 그 이후에 베푸실 하나님의 회복을 마치 이미 일어난 확고부동한 사실처럼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사(요치에니, 빛으로 이끌어 내시다) 광명에 이르게 하실 것임을 그는 굳게 믿었습니다. 연약하여 넘어지고 범죄한 우리를 치시지만, 결국 다시 싸매시고 구원의 빛으로 이끌어 내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영원한 목자, 완전한 용서 (14–20절)

이제 미가서의 결론인 14절부터 20절은 후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중예배에서 교독문처럼 불렀던 장엄한 희망의 예전문이자 찬양입니다. 미가는 14절에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14절)

미가는 이스라엘을 "주의 기업(나할라)"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고유한 재산,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비록 범죄하여 징계를 받고 포로로 흩어지게 생겼지만,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까? 목자가 되셔서 바산과 길르앗의 풍성한 초장으로 우리를 다시 먹이시고 인도해 주옵소서!"라는 가슴 뜨거운 중보기도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과거 출애굽 때 보여주셨던 놀라운 기적을 다시 베푸시어, 모든 열방이 두려워 떨며 굴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놀라운 회복의 약속 앞에서 선지자의 가슴은 터질 듯한 감격으로 벅차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성경의 저자인 자신의 이름, '미가'의 뜻을 그대로 담아 역사에 남을 위대한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미가라는 이름의 뜻이 바로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18–19절)

세상의 어떤 신이 반역한 백성을 이토록 사랑합니까? 세상의 어떤 통치자가 자신을 배신한 자들의 죄악을 발로 밟아 짓이기고, 그 모든 죄를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도록 깊은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습니까? 20절의 마지막 고백처럼 우리 하나님은 옛적 조상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한결같은 사랑인 헤세드(인애)와, 변함없이 약속을 성취하시는 성실하심인 에메트(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하씨드(거룩한 자)'처럼 완벽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에메트'와 '헤세드'가 우리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이 미가서 7장의 벅찬 사죄의 은총은, 훗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야말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져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맺음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미가의 시대처럼 '헤렘(그물)'이 난무하고, 권세자들의 '아바트(결탁)'로 인해 텅 빈 과수원처럼 삭막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깊은 절망의 밤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우리의 시선을 들어 오직 여호와를 '차파(우러러보며)', 인내로 '야할(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비록 내 삶이 지금 엎드러져 있을지라도(나팔르티), 언약에 신실하신 우리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빛으로 이끌어 내실(요치에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분, 변함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이 위대한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평생의 찬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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