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은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인생과 신앙생활에서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칠십 인의 파송과 사역 보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까지, 본 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분주함과 사역의 열매 이면에 흐르는 영적 우선순위의 본질을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1. 칠십 인의 파송과 세계 선교의 예표 (1–16절)
어제 묵상한 9장에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예수님은, 10장에 이르러 칠십 명의 사람들을 따로 세워 온 동네로 보내십니다.
왜 하필 '칠십 명'일까요? 구약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온 세상 민족의 총수가 바로 70개입니다. 9장의 열두 사도 파송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향한 사역이었다면, 10장의 칠십 인 파송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온 세상 열방과 이방인에게 확장될 세계 선교(Cosmopolitan Mission)를 미리 내다보는 복선적 사건입니다.
주님은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세상의 자원이 아니라 하늘의 공급하심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하늘의 대사이기 때문입니다.
2. 사역보다 관계, 은사보다 구원의 기쁨 (17–20절)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칠십 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보고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기도할 때 병이 낫고, 선포할 때 어둠의 결박이 풀리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나는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러한 성령의 능력이 강력히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 10:19)
그러나 주님은 곧이어 사역의 성공보다 훨씬 중대한 영적 기준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20)
능력과 은사보다 앞서는 것은 바로 구원의 감격입니다. 남을 전도하고 기적을 행했다 할지라도,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거나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은 '사역' 이전에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3. 성령으로 계시를 받는 자의 복 (21–24절)
예수님은 성령으로 크게 기뻐하시며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십니다.
계시(啓示)란 가려진 비늘이 벗겨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주실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참되게 알게 됩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과 다윗, 솔로몬 같은 왕들도 사모했으나 보지 못했던 메시아 구원의 시대를, 제자들은 직접 보고 듣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오늘 우리가 바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복된 자들입니다.
4. 종교적 형식을 넘어선 참된 이웃사랑 (25–37절)
한 율법교사가 영생을 얻는 길을 묻자, 주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대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리고 "누가 내 이웃인가"를 묻는 그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 곁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차례로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제사 의식과 종교적 규칙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가장 핵심적인 생명과 긍휼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자신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3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과 재물, 시간과 열정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낼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5. 분주함을 넘어 말씀 앞에 머무는 최우선순위 (38–42절)
마지막으로 주님은 베다니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이 장면은 사역과 봉사 이전에 지켜야 할 신앙의 절대적 우선순위를 웅변합니다.
언니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반면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조용히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불평하며 동생에게 일손을 돕게 해달라 요청했을 때, 주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0:41–42)
주님이 봉사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주함에 사로잡혀 마음이 갈라지고(메림나스) 원망이 생기는 봉사는 참된 섬김이 될 수 없습니다. 봉사 이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앉아 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 머무는 이 '좋은 편'을 결코 빼앗기지 마십시오.
6. 결론: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신앙생활의 성패는 우선순위에 달려 있습니다.
사역의 능력 이전에 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의 감격을 품으십시오. 종교적 틀에 갇히지 말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참된 자비를 베푸십시오. 그리고 수많은 분주함 속에서도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자리를 최우선으로 사수하십시오.
주님과의 깊은 친밀함 속에서 흘러나오는 사역과 헌신만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신앙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렬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