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안식일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지키고 쉬는 날이 아닌,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메마른 영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부어주시는 은혜의 날입니다.
지난주 설교를 한 후에 제 심령에 한 가지 거룩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내 안식일"이라고 하셨는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안식일에 과연 어떤 일을 하셨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 특별히 마태복음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신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안식일과 주일은 단순하게 예배를 드리고 쉬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에 굉장히 많은 일을 행하셨고 우리가 생각하는 멈춤의 안식과는 깊이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신 일은 첫째로 치유 사역이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안식일에 행하신 7가지 대표적 치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당에서 오른손 마른 자를 회복시키시고, 18년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인을 고치셨으며, 바리새인 두령의 집에서 고창병 든 자를 고치시고,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와 실로암 못가의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안식일에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안식일에 회당에 가셔서 가르치신 후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 자유의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셋째로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 등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달리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계시하는 권세 있는 새 교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 힘쓰도록 가르치셨고, 이 가르침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확장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규례(습관)대로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이나 강가 등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 성경을 강론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아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교의 안식일 전통에만 머물지 않고,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매주일 첫날, 즉 오늘날의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만찬을 나누며 헌금을 드리는 새로운 전통을 수립했습니다.
교회회사적으로 4세기 후반의 《사도헌장》 제7권 23장에는 "안식일과 주일 축제를 지키라. 전자는 창조의 기념일이요, 후자는 부활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라 하였고, 제8권 33장에서도 종들에게 안식일과 주일에 교회에 가서 가르치심을 받을 수 있도록 여가를 주라 하였습니다. 또한 라오디게아 공의회 제16조에서도 안식일에 성경을 읽도록 권면했습니다. 예수님, 사도 바울,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며 깨닫게 되는 것은 안식일이든 주일이든 단순히 지키는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예배하며 성도 간에 삶을 나누는 생명의 역사를 사는 것입니다.
본문인 마태복음 12장은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을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님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선언하신 후, 9–13절에서 한쪽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시는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며, 그 주인이 안식일에 실제로 무엇을 행하시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태복음 12:12)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종교적 신앙에 정면으로 맞서시며 율법의 문자가 아닌 안식일의 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을 잘라 먹을 때 율법적으로는 먹어서는 안 되지만, 주님은 다윗의 예를 들며 율법을 지키는 외형보다 율법의 정신인 '긍휼의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이 나의 아픔과 고통이 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헬라어로 고통은 파소스(πάθος)라 합니다. 곁에서 함께 안타까워하는 것은 심파티(συμπάθεια), 상대의 감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엠파티(ἐμπάθεια)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두 단어를 넘어 영단어 Compassion의 원어적 의미인 스플랑크나(σπλάγχνα)의 마음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고대 헬라 문화권에서 '스플랑크나'는 인간의 창자(가장 깊은 속)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 할 때 사용된 이 단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공유하는 자비심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고 봉사할 때 우리는 바로 이 스플랑크나의 마음, 그의 고통이 나의 아픔이라는 주님의 심장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종 되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신 날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손 마른 사람의 경우, 육체적 아픔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아픔과 죽어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사람의 손의 회복을 넘어 그 영혼이 살아나고 자유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육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안식일에 치유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당시 랍비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39가지로 제한했고 200규빗(약 900m) 이상 걷지 못하게 했습니다. 중세나 청교도, 초기 한국교회에서도 글 쓰지 말기, 매매하지 말기, 수염 깎지 말기 등 수많은 율법적 규정이 만들어졌고 주일에 잠만 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율법주의의 삶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버리고 문자에 매여 타인을 판단하는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지만 성령은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옭아븼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로마서 7:6, 새번역)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바리새인처럼 판단과 정죄, 형식과 율법만이 흘러가고 있습니까?
손 마른 사람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은 단순히 병이 나은 손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생명의 손이었으며 그녀(그)의 영혼도 함께 살아났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밀라!" 우리의 굳어버린 마음, 메마른 신앙, 형식에 갇힌 믿음을 오늘 주님 앞에 내밀 때, 주님은 그것을 회복시키시고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규정을 지키는 종교가 아니라, 긍휼로 사람을 살리고 생명으로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곁에 있는 아픈 자, 지친 자, 상처 입은 자를 향해 스플랑크나의 마음으로 다가가시고, 받은 영원한 생명을 다른 이에게로 흘려보내는 주일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