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삶(Life of the Church): 마태가 제시한 천국 백성의 규범
마태복음 18장(18:1~19:2)은 마태복음에 수록된 예수님의 5대 강화(설교 묶음) 중 네 번째에 해당하며, 그 주제는 바로 '교회의 삶(Life of the Church)', 곧 천국 백성의 삶입니다.
사복음서 저자 중 오직 마태만이 ‘교회(ἐκκλησία,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직접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우하고, 갈등과 죄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침을 본 장을 통해 선포하십니다.
2.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어린아이(파이디온)와 종의 신앙 (1–5절)
1절은 "그 때에"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바로 앞선 17장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지 않기 위해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어 성전세를 납부하셨습니다. 자신의 신적 권리와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질서와 영혼을 배려하신 직후,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세속적 서열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어린아이는 헬라어로 파이디온(παιδίο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아람어 언어 배경에서 이 단어는 '어린아이'라는 뜻과 함께 '종(하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니라" (마 18:3–4)
당시 고대 사회에서 '파이디온'은 법적·사회적 권리가 전무하여 전적으로 부모나 주인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낮고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이라고 경고하신 것은, 곧 "스스로 종이 되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두렵고도 엄중한 말씀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내 지식이나 경험, 나의 어떠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품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오직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의 모습입니다.
3. 소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 두려운 경고와 철저한 회개 (6–10절)
이어 6절에서 예수님은 공동체 안의 '작은 자(소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연자 맷돌(μύλος ὀνικός)'은 나귀가 돌리는 거대한 맷돌을 뜻합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우리는 말 한마디, 경솔한 행동, 무심한 태도로 다른 지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뼈저리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가 생각하는 막연한 온정주의를 넘어설 만큼 엄중합니다.
8절부터 10절에서 손과 발을 찍어내고 눈을 빼어버리라는 비유는, 죄에 대한 단호한 결단과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내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의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지체들을 보호하고 섬기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4. 잃은 양의 비유: 산(투라)과 들을 넘나드는 주님의 열정 (11–14절)
12절부터 14절의 '잃은 양 비유'는 한 영혼을 향한 목자 예수님의 불타는 열정을 보여줍니다. 이 비유는 누가복음 15장 3~7절과 평행을 이룹니다. 흥미롭게도 누가는 양을 잃어버린 장소를 '들(광야)'로 묘사한 반면, 마태는 '산(mountain, ὄρη)'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아람어 ‘투라(טורא, Tura)’가 '들'과 '산'으로 모두 번역 가능한 중의적 단어인 데서 기인합니다. 평지를 선호하는 누가와 달리, 마태는 하나님의 산을 '종말론적 계시와 신현(Theophany)의 처소'로 강조하는 독창적인 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들이든 산이든, 주님은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찾아다니십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이 주님의 열정은 목회자나 선교사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모든 성도가 품어야 할 거룩한 사명입니다.
5. 교회의 권세와 영적 질서: 건강한 영적 분위기를 세우라 (15–17절)
15절부터 17절은 공동체 내부에서 죄를 범하거나 질서를 해치는 자를 대하는 '교회의 권세와 3단계 권면 절차'를 다룹니다.
주님은 무조건적인 방치나 감정적 정죄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① 1단계 (1:1 개인 권고): 상대방의 자존심과 인격을 존중하며 은밀히 찾아가 권면합니다.
② 2단계 (두세 증인의 동행): 듣지 않을 경우 신뢰할 수 있는 두세 사람의 증인과 함께 찾아가 확증합니다.
③ 3단계 (교회의 공식 권고): 끝까지 불순종할 때 교회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치리하여 영적 질서를 바로잡습니다.
교회에서 기도, 말씀, 예배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교회의 거룩하고 따뜻한 영적 분위기'입니다. 무책임한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고 분위기를 흐리는 악한 영향력을 차단하고, 사랑에 기초한 영적 질서를 지켜나갈 때 교회는 비로소 건강하게 부흥합니다.
6. 연합의 자세: 합심하여 기도할 때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 (18–20절)
왜 건강한 영적 분위기와 연합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18절부터 20절이 그 해답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9–20)
사탄은 교회와 가정, 비즈니스 등 모든 공동체를 시기와 분열로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연합하여 영적 질서 안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놀라운 기도의 응답과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합심하여 기도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7. 일만 달란트의 탕감과 무한한 용서: 참된 자유의 비결 (21–35절)
본 장의 절정이자 천국 백성 삶의 정수는 바로 '용서(Forgiveness)'입니다.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70 × 7 = 490번, 곧 무제한으로)" 용서하라고 선언하십니다.
첫째, 용서는 상대방보다 먼저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과 원망을 품고 있으면, 내 마음에 쓴 뿌리와 올무가 생겨 영적인 기도가 막히고 사탄에게 틈을 내어주게 됩니다. 용서할 때 비로소 내 영혼이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회복됩니다.
둘째,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받았습니다. 본문의 '일만 달란트(10,000 talents)'는 당시 최대 숫자(만)와 최고 화폐단위(달란트)의 결합으로, 약 6천만 일 치 품삯(수백억~수천억 원에 달하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을 상징합니다. 반면 동관이 빚진 '백 데나리온'은 약 100일 치 품삯(수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주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용서와 십자가 사랑을 입은 성도라면, 마땅히 이웃의 작은 허물을 덮어주고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용서와 천국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랑과 겸손, 용서가 살아 숨 쉬는 복된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