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태복음의 전체 구조를 볼 때,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매우 정교하고 의도적인 구도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탄생과 성육신을 기술하고, 사역의 준비 과정으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신명기 말씀으로 물리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서 그 유명한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거룩한 윤리와 십자가의 도를 권위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8장부터는 '예수님의 권위와 권세(Authority & Power)'에 대한 본격적인 이적과 기적의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선교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단락이 나누어집니다.
여기서 마태복음의 서두와 산상수훈의 시작을 대조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역의 대상 구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산상수훈의 직접적인 대상은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반면 8장부터 시작되는 치유와 기적 이적 사건의 일차적 대상은 바로 수많은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처럼 철저히 구분되어 진행되었습니다. 무리를 대상으로 사역하실 때는 치유 사건과 놀라운 이적 및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셨고, 제자들에게는 비유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깊이 훈련시키셨습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의 사역이었다면, 8장부터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행함과 권세'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권위를 가지고 사역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를 힘입어 이 어두운 세상에서 마귀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역이 곧 우리의 사역이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을 나타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히 세 부류의 기적 대상이 웅장하게 전개됩니다.
① 약자 치유: 나병환자, 이방인 백부장의 노예, 베드로의 장모 등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고통당하던 약자들을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② 어둠과 악령 제거: 자연(풍랑), 악령(귀신), 질병 등 사탄이 인간을 억압하고 파멸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을 말씀으로 직접 제거하신 사건입니다.
③ 장애와 결함의 회복: 맹인, 청각 장애인 등 신체적 장애와 결함을 완전케 고치시는 창조주의 회복 사건입니다.
마태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웅변적으로 선포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이러한 자유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관념이나 개념 속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면 이러한 역사와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역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소망처럼,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 우리의 일상과 삶의 현장 가운데 능력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나병환자의 치유: 정결 규례를 넘어 죄를 사하시는 주님
첫 치유 사건은 당시 가장 절망적인 병자였던 나병환자(Leper)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이 나병환자의 사건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레위기의 나병환자 정결 규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 환자들은 부정한 자로 분류되어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분리된 채 진영 밖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타인이 접근해 오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나병은 영적으로 '죄'의 비참한 속성을 상징합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나병환자는 율법의 경계를 넘어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렸습니다. 주님은 손을 내밀어 부정하다고 격리된 그에게 직접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는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육신의 질병 치유를 넘어, 죄인 된 우리를 회개케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2. 백부장의 믿음: 이방인을 향한 구원과 '주여(Kurios)'의 고백
이어 가버나움에서 로마 백부장(Centurion)이 자신의 중풍병 걸린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사건이 펼쳐집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군사를 거느린 로마 정복군의 장교이자 이방인이었습니다. 당대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이방인은 구원의 열외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하시는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유대인의 울타리를 넘어 이방인 온 세계를 향해 힘차게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은혜의 포인트는 나병환자와 백부장이 예수님을 부른 호칭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Kurios)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르되 주여(Kurios)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나병환자와 백부장이 예수님을 부른 호칭은 당대 지식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존경의 표시인 '선생님(Didaskalos)'이나 '랍비'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주여(Κύριος, Kurios)'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내 인생의 참된 주인이십니다!"라는 절대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참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뜻, 내 계획, 내 이기적인 의지는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우리의 삶을 철저히 수동적으로 주인 되신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맡기는 삶입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이 위대한 주권 고백과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극찬하시며 즉시 그 하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3. 폭풍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 "너의 주인은 누구냐?"
베드로의 장모와 수많은 질병, 귀신들린 자들을 말씀으로 고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이때 바다에 크나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은 거친 폭풍 앞에서 죽을까 봐 벌벌 떨며 광풍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고물에서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 장면은 내 인생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내 인생의 참된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면, 삶의 현장에 모진 폭풍과 환난이 밀려와도 절대로 벌벌 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풍랑을 통제하시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삶의 선장이 되셔서 친히 인도하실 것을 온전히 믿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 짧은 힘과 경험으로는 거친 폭풍을 감당할 수 없어 불안해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통해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물으시는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너의 주인은 누구냐? 너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 질병도, 환난도, 어떤 시험도 주님이 우리의 참된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4. 참된 제자도: 크리스천 라이프
이어서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될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제자도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대다수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이 단락을 '제자도(Discipleship)'라고 부르지만, 참된 의미에서 이것은 모든 성도가 매일 살아가야 할 '크리스천 라이프(Christian Life)' 그 자체입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님께 고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그러나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십니다. 또 한 제자가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고 하자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주님의 말씀이 매우 매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그 어떤 세상의 가치나 인간적 정보다 최우선이며,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는 성도의 단호한 결단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서기관이 예수님을 부른 호칭을 다시 보십시오. 서기관은 예수님을 '선생님(Didaskalos)'이라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삶의 지식을 더해주는 '선생'으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내 모든 삶을 다스리시는 '주(Kurios)'로 부를 것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주님을 '주'라 부르며 끝까지 따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5. 귀신들린 자의 치유: 귀신들의 고백 "하나님의 아들이여"
8장의 마지막 단락은 바다 건너편 가다라(거라사) 지방에서 쇠사슬도 묶을 수 없던 귀신들린 자 둘을 고치신 위대한 정복 사건입니다.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들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치는 고백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시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인간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은 끔찍한 신성모독이었습니다. 당대의 서기관들도, 심지어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역설적이게도 사탄의 악한 영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정확히 알고 선언했습니다.
귀신들은 귀신같이 압니다!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행하실 일과, 자신들의 어둠의 지배가 끝나고 영원한 심판의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 떨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 주님을 보지 못했지만, 오늘 우리는 영안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심을 밝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병의 부정함도, 중풍병의 무력함도, 바다의 광풍도, 귀신들의 어둠도 말씀 한 마디로 제압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에게 예수인 나는 누구냐?"
지식과 관념의 '선생님'을 넘어, 내 삶의 모든 풍랑을 주관하시고 죄를 깨끗케 하시는 나의 참된 '주님(Kurios)'으로 모셔 들이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참된 주인이 되실 때, 우리 삶에 밀려오는 모든 질병과 환난과 시험은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평안이 충만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