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연구 시리즈 · 목회자용
학개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성전 재건과 선민 정체성의 회복
소선지서 연구 시리즈 목회자용
01서론 — 학개서의 배경과 메시지
학개 선지자: "나의 절기"를 외치는 자

학개 선지자의 인적 사항에 대하여는 본문 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자신의 계보나 고향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오직 '선지자'라는 직함만을 사용한다(1:1, 3, 12; 2:1, 10). 학개서를 벗어나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곳은 에스라 5:1과 6:14뿐인데, 그곳에서도 학개에 대한 개인적 정보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messenger)보다는 메시지(message) 자체를 부각시키는 구약의 전통이 학개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최소화하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학개'(חַגַּי)라는 이름은 '나의 절기/나의 축제'(my festival)라는 뜻을 지니며, 동사 '절기 제물을 드리다/순례하다'(חָגַג)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이름이 주어진 것은 아마도 그가 이스라엘의 한 종교 절기 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학개 선지자가 농사에서 이미지와 비유를 많이 도입하여 말씀을 선포한다는 점에 근거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농부 출신이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추측일 뿐, 이를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개가 바빌론 포로 귀환민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과 바빌론에서 귀향해 온 사람들 사이에 미묘하고 불편한 대립이 있었던 점과 학개 선지자가 귀향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가 예루살렘에 거주하다가 귀향민을 맞아 선지자로 사역했다기보다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귀향민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역 당시 그의 나이에 대하여도 추측하기 어렵다. 일부 학자들은 2:3에 근거하여 그가 옛적 솔로몬 성전을 직접 보았던 경험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는 해석으로 그가 책에 기록된 말씀을 선포할 때 80세가 넘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다.

WBC 주석은 학개를 다른 예언자들과 대조적으로 소개한다. 아모스와 이사야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물을 야웨께서 받으실 수 없다고 비난했으며, 미가와 예레미야는 성전의 파괴를 예언했다. 이제 학개는 야웨의 축복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그 성전이 복구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에스겔이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민족주의적, 정치적 왕국이 될 것이다. 학개의 이해는 그 시대와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성전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없는 야웨의 왕국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은 학개가 성전 예언자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2:3에서 학개가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선포할 때, 그는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세대에 속해 있었을 수 있다. 만일 그가 노인이었다면, 그는 586년에 타버린 솔로몬 성전에 대하여 이야기만 들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개가 성전의 과거 영광과 현재의 황폐함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는 성전의 영광에 대한 직접적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대적 배경: 포로 귀환 16년의 좌절과 체념

학개서는 구약의 책들 중에 저작권과 저작 연대에 대하여 학자들의 논쟁이 가장 적은 책 중의 하나이다. 책의 길이가 매우 짧고, 에스라서가 그와 스가랴 선지자의 사역 시기를 확실하게 증언해 주고 있으며, 내용이 에스라서에 언급된 선지자의 사역과 통일하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책에서 다섯 개의 일시(日時)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모든 날짜가 오늘날 달력으로 환산하면 기원전 520년 8월 29일(1:1)에서 같은 해 12월 18일(2:20) 사이의 날들이다.

학개의 사역 시기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538년에 바빌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귀향민들에게 있어 매우 힘들고 암담했던 때였다. 세스바살의 지도하에 총 49,697명이 53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에스라 2:1-70). 그 당시 근동의 새로운 군주가 된 페르시아 제국이 가나안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유다 전체의 인구는 20,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추측이 있을 정도로, 예루살렘과 유다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주변 민족들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고레스 왕의 칙령(538 BC) 이후 귀향민들은 536 BC에 스룹바벨 제2성전의 정초식을 감격스럽게 거행하였다. 그러나 성전 재건 공사는 이내 중단되고 말았다. 사마리아인들의 질시와 방해 공작이 단초가 되었다(에스라 4:1-10). 비단 사마리아인들의 위협뿐만 아니라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었던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을 다시 개간하고 재건하는 일 자체가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또한 주변 민족들의 약탈, 자연 재해, 연이은 흉작 등은 포로 귀향민들의 사기와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고레스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 왕위에 오른 캄비세스 2세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무관심하여 고레스가 약속하였던 변변한 원조조차 중단하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루살렘 새성전 재건 공사는 16년간이나 방치되고 있었다.

HOW 주석은 이 시대를 "현재적 성취"와 "종말론적 희망"의 긴장 상태로 표현한다. 포로 전 및 포로기 선지자들의 희망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성취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긴 하지만, 완전한 성취는 아직 임하지 않은 상황이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백성의 말처럼(학 1:2), 이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성취가 그들의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회복의 성취를 일부 경험하기도 하지만 완전한 성취는 보류된 상태였다.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은 이 시대의 영적 상황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헌신과 희생은 기피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실컷 누리려 한다. 19세기만 해도 기독교 저자들의 글에서 흔히 논의되었던 헌신과 희생이 이제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인기 없는 개념들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부담 없이 섬기라"는 성도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교회의 대형화 추세가 남긴 후유증이라 하겠다. 학개서는 바로 이러한 정서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문학적 구조: 네 개의 메시지로 이루어진 단선적 흐름

학개서는 전 2장에 걸쳐 38절로 구성된 매우 간략한 책이다. 그러나 그 짧은 분량 안에 네 개의 명확한 메시지가 날짜와 함께 기록되어 있어, 구약의 어떤 예언서보다도 시간적 맥락이 분명하다. 첫 번째 메시지는 다리오 왕 2년 6월 1일(1:1-15), 두 번째는 같은 해 7월 21일(2:1-9), 세 번째는 9월 24일(2:10-19), 네 번째는 같은 해 12월 18일(2:20-23)에 선포되었다. 이 네 메시지는 성전 재건 공사의 재개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가 나뉜다.

WBC 주석은 학개서의 구조를 다섯 부분으로 나눈다. (1) 책망과 권고의 메시지(1:1-11), (2) 백성들의 반응(1:12-15a), (3) 격려의 메시지(1:15b-2:9), (4) 교훈과 확신의 메시지(2:10-19), (5) 스룹바벨을 위한 확신의 메시지(2:20-23). 이 구분에서 주목할 점은 1:12-15가 편집자의 삽입기사로서 선지자의 메시지와 백성의 실제 반응을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부름과 백성의 순종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이 기사가 보여준다.

나하합습 주석은 이를 세 개의 큰 메시지로 요약한다. (1) 성전건축에 대한 명령과 백성의 순종(1:1-15), (2) 보잘것없는 것에서 영광으로(2:1-9), (3) 축복의 약속(2:10-23). 이 구분에서 첫 번째 메시지는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서론(1:1-2), 예언자 학개와 백성 간의 논쟁(1:3-11), 학개 선포의 영향(1:12-15). 특히 1:3-11에서 학개와 백성 사이의 논쟁 구조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하박국서의 대화체 구조와는 다른 학개서 고유의 양식이다.

옥스퍼드 주석은 네 편의 단편 예언들을 성전 재건 공사의 재개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제1예언(1:1-11)은 공사 이전의 예언이고, 제2-4예언(2:1-9, 2:10-19, 2:20-23)은 공사 재개 이후의 예언들이다. 각 예언의 기본 동기의 관점에서 구분하면, 제1-2예언은 새성전 재건 공사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강조하며 공사의 재개와 계속을 촉구·독려하기 위한 예언이고, 제3-4예언은 새성전에 따를 축복 약속을 제시하며 격려하기 위한 예언들이다.

전체적으로 학개서의 문학적 구조는 단선적(linear) 흐름을 따른다. 책망 → 순종 → 격려 → 축복 약속 → 종말론적 희망. 이러한 구조는 포로 귀환 세대가 겪은 영적 여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성전을 방치한 죄에 대한 책망이 있고, 그에 대한 회개와 순종이 있으며, 순종에 대한 격려와 축복의 약속이 주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열방의 심판과 스룹바벨에 대한 종말론적 약속으로 절정에 이른다.

신학적 주제: 하나님의 임재와 선민 정체성의 회복

학개서의 핵심 신학적 주제는 하나님의 임재와 선민 정체성의 회복이다. 포로 귀환 세대에게 새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관련하여 그 세부 식양까지 지시된 여호와께서 인정하신 이스라엘의 유일 중앙 성소였다. 따라서 성전이 예루살렘에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 초월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WBC 주석은 학개가 성전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없는 야웨의 왕국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야웨께서 현재 상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1:8-9, 2:17). 학개는 성전이 재건되어야만 야웨의 영광이 되돌아와서 그 백성들과 함께 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야웨의 현존을 바라는 자는 누구나 선한 사람이다. 학개는 회개를 촉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학개의 부름에 응답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자세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현대성서주석은 학개서의 신학적 핵심을 언약적 관계의 회복으로 본다. 만군의 여호와는 인간들이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어느 곳에든지 계시며 언제나 계시는 분이 아니다. "찾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느냐"(욜 11:7-KJV)라고 성서는 묻고, 성서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 가까이 다가오실 때만 그리고 그분께 다가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실 때만 그분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하며,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야 한다(사 55:6).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은 학개서의 메시지를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한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학개는 하나님의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의 삶과 일에만 치중하는 자들에게 회개하고 가치관을 재정비하라고 권변한다. 선지자는 청중들에게 그들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계속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한 탓이라고 말한다. 성도의 책임은 뒤로 한 채 그저 축복만을 누리려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개서의 궁극적 메시지는 종말론적 희망이다. 학개는 열방의 보화가 성전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선언한 민족주의와 유물론으로 말미암아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대의 종말을 내다보고 있었다. 학개는 야웨께서 자연과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사실과 또 대규모로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믿었다. 야웨께서는 하늘과 땅을 흔드실 것이며, 야웨의 통치가 시작될 것이다. 학개의 통찰력은 제한되어 있었으나 올바른 길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에는 성전이 십자가로 대치되며 도장이 가시 면류관으로 대치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

구속론적 연결: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은 완성된다

학개서의 성전 재건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바울 사도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터전으로서 우리 각자를 성전으로 묘사하였다(고전 3:16-17).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어 교회를 이룬 연합체로서의 우리에 대하여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신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가르쳤다(엡 2:21-22).

예수님께서 직접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선언하신 것이었다. 그분의 몸은 성육신된 말씀이 되셨고 성전이 되셨다(요 1:14).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 현존하며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계신다(요 1:14, 2:19-21). 학개가 예언한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2:9)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의 참된 영광이 드러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현대성서주석은 이를 더 나아가 적용한다. 성전은 결코 그 건물의 외양이 아니라 거기에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선민의 참된 관계에 의하여 그 영광이 빛나게 되는 영적 처소였다. 은과 금이 다 그분의 것인데(2:8) 그분께 지상의 찬란한 그 무엇이 필요하시겠는가? 무슨 희생제사가 그분의 사랑을 돈주고 살 수 있으며, 무슨 헌물로 그분의 자비를 살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고 어떤 것도 그분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분은 고군분투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백성들에게 오셔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2:4)고 말씀하신다.

학개서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성전으로서의 우리 자신과 성전의 주인이시고 그 안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 순간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실상과 성전으로서의 우리 자체와 우리 교회의 현실을 새삼 되돌아볼 것이다.


학개서 전체 구조 개요
메시지날짜핵심 내용핵심 구절
제1메시지520 BC 6월 1일성전 건축 중단 비난 → 재개 촉구"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1:8)
제2메시지520 BC 7월 21일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9)
제3메시지520 BC 9월 24일부정에서 정결로, 저주에서 축복으로"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축복하리라" (2:19)
제4메시지520 BC 12월 18일열방 심판과 스룹바벨에 대한 약속"내가 너를 택하였노라" (2:23)